쌍을 이루는 것들
안구, 고막, 콧구멍, 팔, 다리, 유방, 폐, 신장, 난소, 고환. 나는 비교를 하기 시작했다. 쌍을 이루지 못할 시, 이중 무엇이 제일 문제일지. 일단 눈알은 매우 심각하다. 감각기관으로써 세상을 받아들이는 데 크나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게다가 위의 모든 기관 중에 외관상 크게 티가 날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고막. 고막이라고 쓰고 나니 사실, 고막은 청력일 수도 있고 단지 귀의 모양의 변형으로 쌍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는데, 위의 안구와는 다르게 단순 청력이라면 겉으로는 거의 표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쪽 고막으로 받아들이는 세상 또한 힘겹긴 마찬가지. 콧구멍은 어떤가? 이것도 바로 위에서 언급한 고막과 비슷하다. 나의 코는 비염으로 인해 시즌 별로 새로운 고통을 안겨주는데, 일 년의 일 분기 정도의 시간은 한쪽 콧구멍으로만 숨을 쉰다. 이것은 뇌에 들어가는 산소를 줄어 들게 해 사람을 점점 멍청하고 피로하게 만든다. 하지만 역시 겉으로는 표가 안 난다. 정말 심할 때는 코 중심을 가로질러 시퍼런 줄이 생긴 듯 보이긴 하지만.
팔과 다리가 쌍을 이루지 못할 때는 제아무리 상황을 단정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아도, 대체로 다른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 원인이 선천적일지, 후천적일지 비교해서 무엇이 더 나은 상황인가 따져봤지만 영 소용이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유방, 폐, 신장, 난소, 고환이다. 나는 이것들을 좀 더 세심히 분류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일단 겉으로 보여 지는지 아닌지가 기준이라면 한쪽 유방의 부재는 단연 제일 큰 상실감을 줄 것이다. 고환은 옷으로 가려져 유방처럼 겉으로 쉽게 표가 나진 않겠지만, 성호르몬과 관련 있는 이 기관들의 부재는 당사자의 성격, 어쩌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기도 하다. 물론 동일 선상에 난소도 있지만, 난소가 하나가 남아있는지 두 개가 잘 있는지 말해주지 않으면 평생 아무도 모를 뿐더러, 하나의 부재로 전체적인 건강상태가 위험해지는 것은 아니다.
폐는 두 개로 나뉘어져 있지만 한쪽이 있고, 없고를 따질 수가 없는 공동운명체다. 그리하여 쌍을 이루는 기관들 중에서 꽤나 중요하고 그 중요도는 좌뇌와 우뇌로 나누어 부를 뿐 두 가지 중 한쪽만 외따로 활동할 수 없는 두뇌와 비슷하다. 하지만 콩팥이라고 일컫는 두 개로 이루어진 신장은 둘 중 하나만 쓸 수도 있다. 가족이 아프면 두 개 중 하나를 떼어 이식해 주고도 살 수가 있다. 하지만 애초에 두 개가 정상인 그런 기관. 하나로 살아도 지장이 없다지만, 두 개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 비정상이라고 진단 받는.
나의 오른쪽 신장이 쪼그라들었다고 한다. 나는 내 신장이 쪼그라든 것을 몰랐다. 나는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에게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그걸 몰랐다. 내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평생 아무도 모를 오른쪽 신장의 부재. 별안간 스페어 타이어가 없는 삶을 덜컥 살게 되니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그 존재에 대한 상실감에 짧았지만 목을 놓고 울게 되었다. 쌍을 이루지 못한 나의 왼쪽 신장을 그동안의 노고를 안쓰러워하며, 내가 영원히 잠들 때까지 홀로 고군분투할 앞으로를 떠올리며, 그렇게 부끄러울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울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