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나의 멜랑콜리적 상상
설치미술작가 우한나의 작업은 유쾌한 멜랑콜리적 상상력의 활동이자 결과물이다. 그의 작품은 어떤 상황을 연출하거나, 분위기를 발생시킴으로써 주어진 공간을 특정 장소로 변화시키고, 특유의 작가적 상상력을 관객과 공유한다. 그곳에서 피어나는 수많은 이야기와 시각적 환영(visual simulacres)은 현실의 가능한 이면들을 들춰내고 세계와 존재의 다양체(multiplicity)적 모습을 암시해준다. 주로 일상적 사물의 생경함에서 시작되고, 익명의 사물이 무대화 과정을 거쳐 주인공이 되는 서사구성으로 이루어지는 우한나의 작업은 단지 상상을 통해서 대상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과정이 아니다.
작가가 대상(혹은 욕망의 대상)과 맺고 있는 관계는 다분히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우한나의 작업은 불가능한 대상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과정이다. 즉 작가가 대상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말하자면 그것을 원하면서도 그것에 이르는 길은 원하지 않는, 멜랑콜리적 상상력의 이중성이 갖는 모호함에 기반한다. 작가의 대상에 대한 이해는 사물이나 장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비물질적인 것을 창출하는 물질적인 것’에 대한 이해로의 우회(detour)를 담고 있는 우한나의 작품은 조형성을 지니는 덩어리들로 구성된다. 특히 우한나 작품이 담지하고 있는 여성적 조형성은 작업의 재료로 쓰이는 각종 사물들이 같거나 다른 것들과 결합하면서 이중적 성격을 갖게 된다. 주체가 대상 안으로 스며들어 겹침에 기인하는 이러한 특성은 우한나의 세계에서 보라색이라는 특정한 색의 사용으로 대변될 수 있다. 수많은 보라색들은 때로 분홍색 계열로, 때로 푸른색 계열로 등장하며 작품 속에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구가한다. 최근에 참여한 전시 <땅>에서 선보인 우한나의 신작 '행진하는 숙녀_느릿하게'는 내용적으로나 조형적으로나 그가 공간을 해석하고 대상과 맺어온 관계를 일관되게 보여준다.
2018년 12월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송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