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라 (前, 인사미술공간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 現, 대구 신세계갤러리 큐레이터)
작가 우한나는 작지만 스스로 구축한 플랫폼을 통해 첫 개인전을 선보였다. 지난 9월 20일에서 10월 4일까지 <CITY UNITS>가 열린 촉촉투명각은 작가가 동료와 함께 사용하고 있는 작업실이다. 을지로3가역 8번 출구로 나와, 휴대폰을 이리저리 돌려 지도앱을 확인하면서 걸어야 겨우 찾아갈 수 있는, 잘 드러나지 않는 도심의 구석이다. 오후 7시부터 11시라는 관람시간에 맞춰 으슥한 을지로 골목길을 따라 이곳을 찾아가는 것은 마치 낯선 도시를 탐험하는 느낌이다. 작가는 ‘도시생활의 우울함과 무력감은 내 작업 전반적 주제’라고 말하고 자신은 서울에 사는 도시인으로서 시선을 숨기는 것에 익숙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 오히려 시선을 숨기는 것을 극복하려는 듯 적극적으로 시선을 건네고 있다.
작가는 서울 시내에서 주어온 오브제와 갖가지 사물을 조합하고, 구멍을 뚫거나 그려서 눈(目)을 만든다. 그리고 이 눈을 통해 사물이 시선을 교환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손전등이라는 새로운 시선을 보탠다. 관객은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안내자로부터 손전등을 받게 되는데, 손전등의 불빛은 시선의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어둠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곳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눈’이다. 관객은 손전등을 이러저리 비추어 보며 숨겨진 작품을 찾아보기도 하고, 어둠 속에 잘 보이지 않는 작품을 면밀하게 살펴보기도 한다. 작업실부터 시작된 전시 공간은 외부로 이어진 테라스와 건물의 외벽을 넘어, 건너편 건물의 지붕까지 이어지는데,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 손전등을 전시장 밖 골목길과 건물 등에 비추어 본다. 손전등은 작업실 안에서 밖으로, 사물에서 공간이라는 시선의 확장을 이끌어내며 서울이라는 익숙한 도시의 낯선 풍경들과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
작가가 <CITY UNITS>에서 보여준 작품은 스티로폼, 비닐, 천, 털 등 보잘 것 없거나 연약한 성질의 오브제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관객이 손전등을 비추며 살펴보았던 어둡고 인적 없는 골목길은 대도시 서울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곳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잠깐의 시선조차 두지 않아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했을 법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우리가 속해 있는 삶의 일부분이다. 작가의 작업실로부터 시작된 이 전시는 내가 속해 있는 환경과 주변, 그리고 도시를 살펴볼 것을 권유하면서, 나아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손전등을 비추어 보는 것처럼 보다 면밀하게 관찰하기를 제안하고 있는 것 같다.
우한나가 작업실을 통해 스스로 플랫폼을 만들고 작업을 선보였던 구조는,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미술가들 사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방식이다. 공간을 마련하여 동료를 초대하거나, 사적 공간을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 이른바 ‘신생 공간’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플랫폼은 기존의 미술계 시스템에 대안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거대한 중심으로만 향해있던 권력을 자유롭게 분산시키고 또 다른 영향력을 키워내고 있는 듯하다. 서울 곳곳의 이 작은 플랫폼이야 말로 관객으로 하여금 가장 ‘적극적인’ 시선을 갖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의 젊은 작가와 관객 모두에게 유효한 방식으로 보인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거대한 플랫폼이 아닌, 겉으로 보기엔 작고 닫혀 있는 플랫폼 같지만, 우리의 주변과 그 요소를 줌인해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젊은 작가들은 스스로 만들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작은 시도들을 적극적으로 보고, 시선을 교환하고 관계를 맺는 행위이며, 보지 않았거나 무심하게 보았던 것을 면밀하게 보게 하는 가능성일 것이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손전등을 비추어 보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