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현 (독립기획자)
우한나의 네 번째 개인전 <Woo Hannah: Ma Moitié>는 하나의 아이덴티티로서 디자이너 우한나를 전면에 세운다. 작가는 디자이너 우한나의 이름으로 자신의 신작을 선보이고, 이로써 명품(brand-name product)이 명품(masterpiece)의 자리를 차지한 시대에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으로서 미술이 가야 할 자리를 묻는다. 이번에 제작한 신작은 모두 버려진 천을 재활용하여 만들었다.
작가가 연출한 디자이너 우한나는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차세대 디자이너로서 과감하고 참신한 시도를 서슴지 않는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혁신적인 창작을 이어 온 그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고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자신의 작업실을 공개한다.
새롭게 공개되는 컬렉션 ‘마 모아띠에(Ma Moitié)’는 현대인의 실존적 문제에 대한 독창적인 관점을 담고 있다. 컬렉션의 메인이 되는 ‘Organ’ 시리즈는 심장, 대장, 콩팥 등 패브릭으로 재탄생한 신체 장기로 구성된다. 2019년, 자신의 콩팥 한쪽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그녀는 인간 장기를 디자인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하늘색 실크로 제작한 심장, 이태리산 수제 패브릭으로 재탄생한 간, 비건 인증을 받은 페이크 레더로 만든 남성기 등 그녀가 디자인한 장기는 잃어버린 나의 반쪽을 향한 슬프지만 발랄한 연가이다. 이 작업은 외형상 밝고 경쾌하게 보이지만, 겉보기와 달리 그 안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우울과 고독의 아이러니가 내재되어 있다. 우아한 파스텔톤 표면에 속아서 그 안에 담긴 깊은 침잠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녀의 작업의 밝은 색상은 오히려 가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깊은 상실과 애도의 증거이다. 내 것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나의 일부에 대한 상실감이 이 시리즈의 원천이다. 그러한 내 몸으로부터 오는 소외가 낳는 우울함을 그녀는 애써 발랄하게, 오히려 경쾌하게 표현한다. 이러한 감각은 그녀의 회화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무드 테라피 회화’라고도 불리는 그녀의 회화는 보는 사람의 기분을 개선하는 효과를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크리미한 파스텔톤의 회화는 우울을 감추고 은은한 행복감을 일으키는 동시에 숨겨진 강한 기운과 꿋꿋한 힘을 불러낸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마녀의 비밀공방이라는 소문만 무성한 그녀의 작업실이 최초로 공개되어 새로운 신체 장기가 생명력을 얻는 순간을 엿볼 수 있다. 서울 강남 중심에 자리 잡은 그녀의 작업실은 작은 것 하나에도 그녀의 감각과 취향이 깃들어 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뒤에도 시그니처 라인만큼은 시작부터 완성까지 직접 자신의 손을 거치게 하는 그녀. 그녀의 작업실은 바로 그러한 손길이 닿아 작품이 탄생하는 생동감 있는 공간이다. 그동안 정제된 런웨이와 쇼룸에서 보던 그녀의 작품과는 다른 면모를 만날 수 있다. 화려한 프로모션의 힘을 입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이전에, 보다 생기 있고 활기찬 작품을 만나보자.
정작 자신에게는 어디에 있어도 모두 사랑스러운 아이들일 뿐, 세간에서 그들을 어느 카테고리에 분류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우한나 디자이너. 개방적 사고와 규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으로, 분야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동하는 그녀는 이 시대의 진정한 아티스트라고 할 만하다.